서울창업신문

대리점(代理店)이 ‘뜨거운 감자’다. 너무 식상하니 이렇게 표현하자. 대리점이 ‘답답한 고구마’라고 하고 싶다. 일단 대리점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기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리점의 사전적 의미는‘일정한 회사 따위의 위탁을 받아 거래를 대리하거나 매개하는 일을 하는 가게’를 의미한다. 대리점 관련 법령이 없을 때는 이렇게 설명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13년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를 겪으면서 2015년 12월「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이 제정되어 대리점에 대한 정의가 정립되었다.

동법 제2조에 따른 정의를 보자면 공급업자와 대리점 사이에 상품 또는 용역의 재판매 또는 위탁판매를 위하여 행하여지는 거래로서 일정 기간 지속되는 계약을 체결하여 반복적으로 행하여지는 거래를 말한다. 여기서 공급업자란 생산 또는 구매한 상품 또는 용역을 대리점에게 공급하는 사업자로서 흔히 대리점 본사라고 생각하면 되고, 대리점이란 공급업자로부터 상품 또는 용역을 공급받아 불특정다수의 소매업자 또는 소비자에게 재판매 또는 위탁판매 하는 사업자로서 앞서 말한 가게를 말한다.

그동안 여러 번「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상의 가맹사업 즉, 프랜차이즈 관련 칼럼을 연재 해왔으니 독자들은 가맹점에 대해서는 익숙하나 대리점은 조금 생소하리라 본다. 대리점은 이번 칼럼에서 처음 언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가맹점보다 대리점이 국내 사업에서의 뿌리는 더 깊다. 가맹점의 역사는 기껏해야 미국 역사를 끌어와서도 100년이 채 안되지만 대리점의 원형은 조선시대‘거간꾼’이나‘여리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거간꾼은 사고 파는 사람 사이에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고, 여리꾼은 호객행위를 하여 물건을 사게 하고 가게 주인에게 삯을 받는 사람으로서 상품 뿐만 아니라 토지, 가옥, 금전대차 등 업무활동이 다양했다. 지금의 대리점은 거간꾼과 여리꾼 사이에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역사가 오래되고 가맹사업처럼 어떠한 명확한 매뉴얼과 시스템적인 사업이 아니다보니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가맹사업 대비 본사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보니 그 수(數)도 국내 가맹점이 약 20만개인 반면 대리점은 약 100만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즉 몇 배 큰 사업형태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리점 사업이 점차 불공정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리점 본사가 가맹사업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가맹점이 아닌 대리점을 모집하면서 정작 가맹사업법 상의 본사가 가질 수 있는 통제력은 그대로 쏙 빼다가 대리점 사업체계에 옮겨 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대리점 시장은 지속적으로 혼탁해지고 있고 대리점 본사의 갑질이 날로 강해지고 정교해져 간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해야할 대리점법은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연약하고 순진하다.

일례로, 그 어떤 갑질보다 무서운 갑질은 대리점 본사 즉, 공급업체가 어떤 회사인지, 회사의 재무구조는 건전한지, 제대로 대리점에게 제품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지 여부 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대리점 거래를 위하여 대리점이 공급업체를 만나도 계약의 상대방이 어떤 회사인지도 모른 채 계약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하게 계약이 이루어지고 안정적으로 대리점 사업이 건실하게 유지될 것이라 믿는 것은 바보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대리점법은 기초적인 정보라도 공개하도록 하는 기본적 장치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계속 무의미한 개정만을 연례 행사처럼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더 답답하고 놀랍기까지 한 것은 가맹사업법 상 가맹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정보공개서 제도와 유사한 대리점 본사의 정보공개서 등록 제도가 애당초 2015년 대리점법의 최초 제정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둥, 아직 시기상조라는 둥 이해될 수 없는 핑계를 만들어가며 해당 제도를 제외시킨 법안을 통과시킨 결과 현재 대리점 본사의 갑질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급기야는 전국 대리점주 협의회에서 이 제도를 대리점법에 신설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국회와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감감 무소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마디 했을 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신설된다면 기쁘지 않고 더욱 슬플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상공인 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거래정책국에서 가맹·유통 분야 업무를 분리해 유통정책관을 신설했단다. 또한 대리점 산업과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불공정거래행위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자 최근 2018년 10월 대리점 본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집중 감시하기 위해 유통정책관 소속으로 대리점거래과(9명)를 신설했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작 대리점거래과는 국내 대리점 본사가 어디에 어떤 회사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어떤 형태로 대리점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더욱 모른다. 당연하지 않은가? 대리점법에 대리점 본사의 정보공개서 등록 제도가 없는데 무슨 수로 공무원이 국내 대리점 본사의 존재여부와 현황을 알 수가 있을까. 눈치가 보였는지 요즘 실태조사를 해본다고 야단법석이다.

미안하지만 실태조사를 1년 365일을 해봐야 정보공개서 등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보다 효과는 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원래 어리석은 걸까, 아니면 흔히 행정학 등에서 언급되는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s) 또는 **훈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에 빠져 어리석게 된 걸까? 무엇에 해당하든 그 피해는 국민의 한숨이고 그 손해는 대리점의 눈물이다.

大利店으로 소상공인들이 그나마 먹고 사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大理店으로 현 법령과 정부의 모습이 납득이 되는 날이 있기는 하는 걸까?

<보충>

*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로렌스 피터 교수와 작가 레이몬드 헐은 관료조직의 수백 건의 무능 사례와 원인을 분석하여 1969년에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를 발표한다. 피터 등은 사례분석을 통해 "공무원의 무능력이 개인보다는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즉 "위계조직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수준까지 승진한다"는 것이 "피터의 원리"이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 만큼 승진을 거듭하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벅찬 일을 맡고서야 승진을 멈추게 된다.(능력에 버거운 일이니 성과를 내지 못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임) 하지만 본인은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 노력한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워커홀릭(일벌레)이 되거나,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며 자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이려고 애쓴다.

회의시간에 쓸데없이 말을 길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부하직원이 올린 보고서나 기안문의 맞춤법에 유달리 집착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훈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 전문적 무능)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과 케네스 버크 등이 제시한 개념으로 '훈련된 무능'이란 "한 가지 지식이나 기술에 관해 훈련받고 기존 규칙을 준수하도록 길들여진 사람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박승룡 vip@robust.company
글로벌 프랜차이즈학 석사
가천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프랜차이즈 코스닥 상장 및 유통분야 전문 자문
로버스트행정사사무소 대표 공인행정사

로버스트컨설팅 대표 가맹거래사